무신정권기 반란을 다시 재평가한다 역사

흔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란"은 중죄 중에 중죄일것이다
그러나 동양사는 유달리 이걸 금지하느라 삼족은 물론 구족을 멸하고 흔적조차 없애버렸다.
하지만 선거도 없고 투표할수도 없는 시절에 백성들이 말할수 있는 수단은 그다지 없었다고 봐도 된다. 신하들조차도 왕의 숙청에 늘 떨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한 사람을 추대해 반란을 통해 나라를 뒤집는 것 밖에는 없었다. 아예 민중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그 무신정권기 반란은 한국사에서 민중들이 극심하게 참여한 시절로 손꼽힌다 후삼국시대 전후 신라의 민중반란 이후 최대였다.

더욱이 무신정권기 반란은 천민이라도 직접 자기가 왕을 먹는 게임까지 이르렀다 (이의민)

동북아에서 유달리 반란이 나쁘다는 인식은 중국이 가지고 일본 역시 제물포조약을 통해 임오군란의 부당함을 명시할 지경이 되었다. 더욱이 일본은 반란의 위협을 막기위해 총은 물론 칼까지 휴대하는걸 금지했다.
북한은 반란자체가 그냥 고사총이다.
지금 중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 웃긴건 신라하대기의 왕족간 반란은 덮는다는 것이고 1차 왕자의 난 계유정난까지는 괜찮다고 하는것이다. 왕족의 반란은 덜 나쁘다는 것이다. 오히려 가장 질떨어지고 더러운 반란은 이것이다

이건 같은 혈통도 죽이는 반란인데 이건 무신난보다 까지도 않는다. 이유는 왕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천년을 유지해서 용서하고 왕이 오백년간 해쳐먹었다고 용서한다

물론 무신난의 반란 이후 결과도 참혹하긴 마찬가지이나 결국 삼별초의 난이 외세로부터 진압되며 암흑의 간섭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모든 대혁명은 이런 반란에 출발했다. 결국 반란을 막기위해 오백년동안 어느나라보다 최선을 다한 조선은 임오군란을 진압한다는 명분을 제물포조약 맺어서 일제와 그 조약을 맺었고 그것이 곧 일제의 개입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리고 거듭된 반란을 막기위해 일제와 서구를 빌린 참혹한 결과는 일제식민지였다. 짱깨식 논리와 메이지 유신때 일제식 논리가 반란을 마치 최악 중에 최악으로 규정한 것이다.

PS 조선도 한가지 웃긴게 고려사를 편찬하며 반역열전을 올리는 짓거리를 하면서 삼국사기를 수정해 신라 하대기 왕족과 그들과 결탁한 자들은 반역열전을 만들지 않았다. 김우징, 김명, 김양, 김헌창을 비롯해 그들과 결탁한 무주출신 염장의 반역이 더 질떨어지고 따로 반역 열전을 만들어야 정상인데 어째서 이런 자들은 그걸 안만들었는지 이해불가다. 아마 경주김씨를 비롯해 안동김씨나 의성김씨 문중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신라 역시 신문왕기 대개혁을 착수했고 그때까지 신라는 전성기였다. 하지만 원성왕기 이후 이미 끝났다.

덧글

  • 솔까정치인의 시대 2017/03/18 21:40 # 답글

    왕고때의 무신정권과 현대 한국의 군부정권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듯 하군요.
  • 내눈을바라봐 2017/03/19 00:05 #

    일단 긍정적인 것은 고려가 이 사건을 겪으며 단 2번에 걸친 권력층 호족연합체 문벌귀족기를 이후에는 권문세가 신진사대부가 나오게 된 배경이 되었죠. 무엇보다 공음전과 음서제로 해쳐먹던 것에 대한 큰 사회적 경고를 준거죠. 애초에 반란에 대한 원인제공자는 문벌귀족세력이죠. 시비도 이쪽이 먼저 걸었죠. 물론 최충헌기는 암흑기가 되나 이전은 조선에도 찾을 수 없는 천민출신의 지도자 이의민이 나타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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