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난 "보이지 않는 무엇"에 대해 이해가 안간다. 스포츠

지금도 이해가 가는 이종범 선수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다라는 말
지금도 항상 이 말은 까이고 까이고 또 까인다.
그냥 차라리
"양준혁과 달리 해외에서 찍은 성적이라도 있고 국제대회에서 성적 찍은게 있지 양준혁은 뭐 그런거라도 있나?"
라고 말해버리면 될일을 저렇게 말해버리니 결국 자멸해버렸다고 본다.
야구는 모름지기 기록을 중시하거늘 "이종범 선수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다"라고 하면 야구의 본질을 깨는 말이 된다.
저건 걍 야구 만화나 야구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말일 것이다.

그 이종범 선수의 팬이 되어 옹호를 하고 싶으면
"양준혁과 달리 이종범은 해외에서 찍은 성적이라도 있고 국제대회에서 성적 찍은게 있지 양준혁은 뭐 그런거라도 있나?"라는 말을 해버리고 또 남들이 이해가기 더 쉽게 말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남들이 설령 반론을 해도 해외리그의 중요성과 또 국내리그의 중요성을 또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뭐 사실 이런 식으로 치면 이종범이든 양준혁보단 차라리 백인천이 짱을 먹을 것이다만
아직까지도 이종범의 팬을 하는 것은 좋으나 도대체 왜 저런 말이 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들이 깨어있다고 착각을 하는 분들. 역사

"대외정보기관이나 학자들이 왜 존재하는지 당신이 그것을 말한적이 없어,여기 역덕후들은 학자들의 직접,간접적 제자들이고.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자면 고려사하고 고려도경이나 봐."

역덕후라는 말도 웃기고 더 웃긴건 학자들의 직접 간접적 제자들이라는 말은 더 웃기고,
흔히 이걸 깨시민이라고 하겠지.
환단고기 믿는 애들이랑 쟤들이랑 큰 차이가 없는게 애시당초에 6334체제가 남들이 시키니까 다 그 과정 수료한애들이라는게 공통점인데,

그래서인지 자기만의 어떤 공부나 자기만의 사상적 기반이 없이 선생들이 그저 시켜서 부모들이 그저 시켜서 학교나 다니니 급급하니 환단고기 밑는 애들이나 쟤들이랑 뭐 똑같지. 일뽕 사관가지는 역갤같은 애들이나 
학자들의 직접, 간접적 제자라는 말만 봐도 답이 나오잖아. 그냥 학자들 눈치나 살피고 직접 간접적 제자 운운하는 것만 봐도 그저 다수가 아닌 일개 몇몇 인간들  눈치보듯 공부하니 저런 식으로 답변을 하는거지. 

예를 들어서 이제까지 왕 처먹으려고 별의별짓 다하던 민애왕의 호가 왜 저렇게 멀쩡히 남아있고, 그리고 문무왕이 안승같은 인간을 받아들인 것도 도저히 이해가 안갈 상황에서 그걸 비판한 것도 동국통감인데, 쟤들은 고려사나 고려도경만 보고 이후 나오는 동국통감은 그냥 이뭐병이라는건가? 동국통감은 없어야 할 책이네?

왜 묘청이나 연개소문은 너무 환빠스러우니 까고 기황후나 기철은 너무 매국적이니 까고?
학자들의 직접, 간접적 제자라는건 뭐야. 또 역덕후란 말은 뭐고, 지들만의 학문 지들만의 취미가 역사인줄 아나봐.
솔직히 난 저런 애들이 직장 상사가 되거나 자식의 부모가 되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간접적은 또 뭐야. 이해하기 어려운걸 이해하기 그걸 쉽게 쉽게 정리하고 만드는 능력이 없으니깐 쟤네들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지.

이해하기 어려운걸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는 수준이 바닥이라는거지.
그러니까 "이종범 선수에게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다" 이런 애자소리나 쳐갈겨대지.


세상에는 이해안갈 글과 말들이 많다. 역사

"그러니 무신과 문신책을 보라는 것입니다.최충헌 나쁜것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책이나 보고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살육의 시대에서도 인구는 증가하고 중앙집권책과 다른 방향도 나아갈것은 다 나아같습니다.최충헌전에 이의방도 승도랑 내전이랑 벌였는데요.최충헌의 승도내전은 새발의 피입니다."

"최충헌이라는 인물이 별거 아닌 인물일지는 몰라도 그 시대에는 자신의 한계에는 위정자로써 무신정권시대에는 그마나 근본적인 것은 한 인물입니다.고려만큼 지방의 세력이 강한 시점에서 난을 제압하고 나름대로 국가는 유지한 인물입니다.최충헌의 시대는 민란시대의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거란이라도 막은 인물이네요.기철만큼 간신인가요.독재자인지만 나름대로 그 시대 위정자인만큼 멍청이는 아닙니다."

"내가 음서, 공음을 이용한걸 능력의 기준으로 봤음? 국어 못함? 초등학교 가야됨?"

"[시험은 자기 능력 증명하는 최소한의 방법중 하나]라고 이야기 했어 분명ㅋㅋㅋ
아 최소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몰라서 그러나? 그럼 내가 한국말 모르는 너를 위해서 매우 쉽게 풀어 써줄게.

시험은 자기 능력을 증명하는 "가장 적게 잡아도. 또는 일정한 조건에서 가능한 한 가장 적게" 자기 능력을 증명하는 방법중 하나.

이래놓고 또 '시험으로 능력 재단 가능하네?리고 하면 국어공부 더 해'"

난 이런 글 적는 인간들 대체 뭔소리하는건지 이해를 못하겠다
지들 스스로 뭔 글 적는건지는 알란가 모른다. 고려의 음서가 이해안간다고 하니깐 저런 글 적었다.

나라가 통일을 못해서인지 아니면 그 상황속에 주변국이 쪼아대는지 쟤네들도 그렇게 변한다는걸 느낀다

이건 흡사 양준혁, 이종범 비교에 "이종범 선수에게는 보이지 않는 먼가 있다"라고 하다가 욕먹은거임 사실 "이종범은 양준혁과 달리 해외에서 활동해 스탯을 찍었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라고 하면 반론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통하듯이

쟤들은 일​관​성​이​고 나발이고 없고 ​쟤들은 머​리​에​서​ ​만​들​어​ ​지​고​ ​나​온​ ​논​리​들​이​ ​막 충돌하는 경향이 너무 엄청난가보다. 지가 무슨 지한테 이야기를 하고 남을 이기려드는 것 같다.​ ​소​통​과​ ​토​론​이​ ​가​장​ ​힘​든​ ​사​람​이​ ​사​실 쟤네들인데​ ​글 정리가 안되나보다

제일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글

"고려의 군사제도는 고향,혈연,사적 연관관계가 깊은데 이런 전투집단이 전쟁에서 어떠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거란,여진전쟁에서 보여주었는데 참 별소리 다 보네요."

사실 난 고려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런 글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참고로 여요전쟁때 군대는 몇십만이 있었는데 몇만이 깨졌다 이것이 그래서 강조는 죽임을 당했고 이후 강조는 목이 따이며 고려는 멸망직전까지 갔다.

이는 추천이나 세습을 통해 군대를 이끌었고 태생부터 추천이나
세습으로 군대를 돌린다는게 이상한 일이고. 그래서일까 저런 이상한 일이 벌어졌죠.. 원균을 욕하나 원균도 저짓거린 하지 않는다.

반대로 귀주대첩은 이것보다 상황이 훨씬 나은데 20만이 있었으나 큰 피해는 없었다. 여긴 그래도 앞전과 달리 과거라는 정상적인 루트로 오른 인물이 군을 이끄니 거둔 승리다

이전에 드라마 무신에서 최충헌의 미화가 장난아니었는데 부원배들을 악역으로 만드는 것과 달리 최충헌은 미화된 글을 적은 것이다


드라마 천추태후도 강조가 미화되어 마치 무쌍난무를 펼치는 것과 똑같은 글을 적은 것이다.

결국 간신배이자 요녀인 기철. 기황후를 낳은 원인을 고려의 음서나 공음전시과, 팔관연등, 도참설 등등으로 찾으니 강조, 최충헌을 갑자기 미화하려고 한다.

나는 고려를 노비안검법, 과거제, 전민변정도감 그리고 조선을 대표할 말기 과전까지 이런 것을 통해 고려를 보려고 한다. 또한 음서, 무과의 실종으로 불균형한 과거제. 노비환천법, 공음을 통해 고려를 또 다시 본다. 더욱이 당송의 토지제 당송의 문무 과거체제까지 여러가지로 비교한다. 근데 세종 본인은 음서니 효종은 음서라서 차별하지 말라니 그런 소리는 왜 할까

사고 방식이 거의 엠파커급임

PS 그나저나 나는 송나라의 멸망이 이해가 안간다. 제 아무리 왕이 개애자리고 해도 도저히 망할 나라가 아니라고 본다. 그 송나라가 도교에 심취해서 자기도 병신되고 나라도 병신만든 놈이 어째서 나왔는지 의문이다. 자기만의 언어도 있고 제도도 좋고 문무모두 과거를 치고 포도 만들고 이렇게 쩔어주는 나라가 멸망한게 신기하다.






역개루 인간들은 뭐가 그렇게 숨길게 많나? 역사

얘네들 웃겨 독소불가침조약이나 소일불가침조약을 까니깐
날 반공주의자로 몰더라
왜 독소불가침조약을 옹호하고
소일불가침조약도 옹호하고
폴란드가 독립전쟁에서 피흘리고
또 자유시참변도 독립운동가들이 잘못했다고 하는건
아주 확대해석 하더라

공산주의에서 현실을 찾는 퇴보를 찾는 것 자체가 모순이거늘
나는 나름에 앞뒤를 정리해주자는 차원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것만

독소불가침조약맻고 몇천만이 죽은 것이 뭐 자랑스러운것도 아니고 뭔헨회담은 전쟁준비로 인한 사재기 그로 인한 물가폭등과 군대가 상주하며 벌어지는 국민들 험악함 이런걸 다 계산하면서 한거잖아. 그렇게 욕쳐먹고 또 욕처먹고. 근데 소련에 공산당인지 콩사탕인지 하는 인간들은 그런거 계산하고 하냐?

사실 진짜 공산당이라면 독소불가침조약이나 소일불가침조약에 빡쳐서 반군이 나와 스탈린이고 뭐고 수뇌부들 다 몰살시키고 파기하는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산당 정신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든다.

숙청도 모자라서 이젠 신의조차도 저버리는데 뭐





무신정권에 대한 이야기. 역사

저는 그 썩디 썩은 문벌귀족세력들과 의종이 못나서 이런 정권을 만들었고
또한 이의민같은 천민과 만적과 김준같은 천민도 지도자가 되어 좋았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그들이 그 자리를 앉으면서 내놓은 개혁은 없죠.
전민변정도감이랄까 뭐 이러한 것들을 내놓은 무신정권 인간들이 없죠.
무과 도입도 내놓은 무신정권 인간들도 없구요.
심지어는 거란에 잔병들 격퇴하려고 지들 군대 안쓰고, 나중엔 몽골도 끌어들였죠.

단 신분의 유동만큼은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끝이었죠.
군사정권과 비교를 하는데, 무신정권은 무과 출신들도 아니고 심지어는 유능한 사람들이 여럿 억압받고 죽었던게 무신정권이죠.

무신정권이 뭐 여진족이랑 싸웠다던가 혹은 금나라랑 싸웠다던가 그런 인간은 찾기가 글쎄죠. 아주 일부 있기는한데 대부분은 그것과 상관이 없죠.

오히려 무신정권 전에 외적과 싸운 김훈, 최질같은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킨게 차라리 더 이해가 되죠.
고려 현종 새끼가(전 이런 일때문에 이 새끼 성군으로 안봅니다.이 새끼가 성군이면 선조는 광개토왕급이죠) 그 장군들 땅을 강탈하고 월급까지 안주다가 그런 장군들 반란일으켜서 아예 없애버리니깐 이후에 3차 여요전쟁때 피똥쌌죠.

하지만 이쪽의 경우도 무과 급제는 커녕 과거제 통과도 못했죠. 그래도 이들이 차라리 낫지. 무신정권에 있는 인간들이 나은지는 의문이 드네요.

제가 볼땐 김훈 최질의 반란보다 못한게 무신정권이에요.. 김훈 최질은 적을 격퇴한 공로까지도 있는데 무신정권에 무신들은 그런게 있나요? 없죠. 단지 현종 그 양반이 정치력이 쩌니까 유능한 문신들과 상의해서 이 19명을 제거한거지.


몽골 사신을 살해한 저고여 사건의 주범은? 역사


흔히 몽골측에선 고려 백성들이 저고여를 죽였다고 하고

고려측에선 여진족이 죽였다고 논쟁이 벌어지는데

뿐만 아니라 몽골의 사신이 장난아니게 거만하니 고려 백성들이 죽였다고 했는데,

사실 제가 보건데 여진족이 아무리 열받고 열받는다고 해도 고려와 관계가 악화가 되면 자신들도 유리할게 없다는 점

또한 몽골측도 이미 땅이란 땅은 다 정벌했는데 고려를 정벌할 필요성이 무엇인가하는 점(여몽연합군의 경우도 태풍보단 몽골이 일본을 점령해본들 이득이 없다고 해서 철수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죠)

몽골측이 행패를 부렸고 뭐다 하는 것 때문에 죽였다는 설이 있죠.

기타 등등등을 다 의심을 할수 있는데 이 사건의 범인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삼별초의 난이라고 아실 것입니다. 무신정권이 고려 원종의 결정으로 인하여

몽골과 화친으로 인해서 망했다는 것도 아실 것이고.

제가 봤을때는 이것의 범인은 무신정권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고여 피살이 있기전에 일입니다.

저고여 피살이 있기전 동국통감의 이야기입니다.

"우부승선(右副承宣) 이공로(李公老)가 졸하였다. 이공로는 문장(文章)이 넉넉하였으며, 더욱 사륙문(四六文, 변려문(騈儷文))에 능하였다. 최충헌이 이공로를 왕의 외척[戚里]과 연관이 된다고 하여 억누르고 등용하지 않은 지 몇 십년이었다가, 예부 낭중(禮部郞中)으로 조충(趙冲)의 막하(幕下)에 채워 두었던 바, 적(賊)을 사로잡는 계책을 올리어 적중된 것이 많았다. 승선(承宣)으로 임명하기에 미쳐 왕이 의탁해 심복(心腹)을 삼아 장차 크게 쓰려고 하였다. 병으로 졸하니, 집에는 한 섬[甔石]의 곡식도 없었다."

보통 사신을 맞이하면 가장 먼저 접선을 하는 쪽은 무신보단 문신들이죠. 더욱이 당시 무신들중 문신들만큼 글귀가 밝거나 정세를 안다거나 하는 인간들은 없습니다. 이유는 문무의 과거에 따라 등용된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고여랑 말이 통할리 만무하죠. 안타까운건 힘에 눌릴대로 눌려 당시 문신들은 어용화되었죠. 왕은 허수아비에 백성도 없고

이젠 피살때 일입니다.

"○몽고 사신이 압록강을 건너 돌아가다가 중도(中途)에 이르러 도적에게 피살되었는데, 몽고에서 도리어 우리를 의심하여 마침내 통교(通交)가 끊겼다."

피살 이후 기록입니다.

○최우(崔瑀)가 그의 집에서 재추(宰樞) 및 문무(文武) 4품 이상에게 연회(宴會)를 베풀기를 3일 동안 하였다.

○임장경(林長卿) 등 30인에게 급제(及第)를 내렸다. 왕이 강화(江華)에 있을 때 그 고을 사람 위원(韋元)과 감반(甘盤)의 구교(舊交)1)가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과거에 합격하였으므로, 임금이 내정(內庭)에 불러들이어 임시로 내시(內侍)에 소속시키고 의대(衣帶)·금은(金銀)·안마(鞍馬)·주과(酒果)를 내렸다.

이밖에도 구체적인 기록이 고려에서도 나오죠 저고여 암살때 비단이 남았다고 하는데 뭐 더 이상은 큰 기록은 없어보입니다.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색출작업을 하지 않았다는거죠.



여기서만 봐도 무신정권에 무신들을 의심해볼 수 있죠. 제가 봤을때는 왕이나 문신들이 몽골 사신과 협력을 해서 문신들이 외교적으로 점수를 크게 따는 즉시 정치적 주도권을 문신들이 쥘수도 있다는 것이죠. 원종의 강화조약에 찬성한 것도 문신들이죠. 반대는 하려고 했으나 싸운 김준이구요.


무신들은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져서 다 썰리겠죠. 더욱이 저때의 문신들은 칼까지 잘쓰는 무신들도 있어서 때문에 바로 죽일 수가 있죠. 예를 들어 경대승은 문신들을 대거 등용했는데, 무신들을 상당부분 썰여죽였습니다.

대령후도 유배뒤 피살이 아니라 실종으로 처리되었죠. 더구나 저 당시 무신정권이 교정도감이다 뭐다 기타 등등등으로 감시도 가능했죠.

여러가지 추측이 나도는데 저는 무신정권측이 사살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몽전쟁도 자신들은 싸웠는데 본질은 기득권을 뺏기기 싫어서 싸운 것이죠. 사병도 안보내고 김경손 장군도 죽였죠.


제 개인적으론 무신정권도 지네 사병들 쓰기 싫어서 몽골군을 끌여다 쓴 적이 있죠. 제가 볼때는 여몽전쟁도 무신정권측이 몽골의 심기를 건드려서 전쟁을 유발시켜서 저항하는 백성들이던 문무신하들 모두 죽이려고 유도했다고 생각합니다. 3년이 아니라 몇십년간 최씨일가가 전쟁에서 강화도에 박힌것부터 웃기죠. 칼로 싸우지 못해 안달란 것들이요. 군공이라고 해봐야 허드렛일이나 하고 반군이나 되고 또 반군이나 진압만 잘하고 치안유지조차도 안했죠.초적이 넘쳐난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김준만 봐도 원래 몽골과 손을 잡으려다가 문신들이랑 왕이 강화를 하니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거죠.

무신정권은 태생부터 그럴수 밖에 없는게 잘배운 무관출신들이 잡은게 아니라 최하급 병사로 징집되어 그곳에서 힘쓰면서 출세한 군상들이 정권을 강탈한게 무신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증명을 받고 뽑히고 이런 애들이 아니였죠. 그래서 통교나 자주 이 개념조차도 망각한 인간들이었죠.


무신정권에 인간들이 손써서 죽인걸 여진족이 죽였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만큼 고려의 막장같은 무신정권에게 티끌의 의심도 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덤으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죽일 가능성은 없군요.

저는 여러 의심을 하는데 무신정권측에서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장희빈이 패자가 된 것은 온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뭐 저는 인현왕후든 하다못해 숙종이든 송시열이든 다 거기서 거기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하나
장희빈은 이들을 확실히 깰 능력이 없으니까 패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네요.


서얼금고법도 완화 혹은 폐지도 못해. 계민수전도 못해 정도전 복권도 못해.
장희빈파가 정권을 잡을때 이런 능력이 없으니 패자로 기억하는거죠.
제가 장희빈이라면 계민수전, 서얼금고법 폐지를 도입해서 다시 조선 태조 시절로 돌리는 것입니다.
조선 태종이 했던 신문고 부활까지

따지고보면 역사의 패자라고 할것도 없어요. 이걸 못하니 장희빈은 요녀이자 그 일가는 난신적자일뿐이죠.
더욱이 울릉도에서 왜구들에게 시달릴때 장희빈이 했던 대처는? 설명할 사람이 별로 없죠.
(물론 저는 정도전을 고려왕조에 무신정권, 재상지종만 봐도
재상정치까지 들먹여서 탁상공론에 찌든 인물이라고 혹평을 하나
뭐 그래도 재상정치를 빼놓고는 나머지 그의 취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죠.)
단지 전 정도전의 이상을 실현시키려면 적게는 몇십년이니 탁상공론형 문신이라고 좋은 평을 안내리는거죠. 
어찌보면 정도전의 이상정치를 숙종시기에 실현이 될 기회를 송시열의 죽음으로
그 장희빈과 그 일가가 차버렸으니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죠.

대략 조선 태조시기로 돌아갈 기회를 그 일가가 차버렸기에 지금도 장희빈은 단지 "비운의 인물"이 되었지
그 이상은 못되죠. 반면 정도전의 경우는 비운의 인물이지만 조선의 비전을 제시한 인물이라고 좋은 평을 내려서
늦었어도 고종기에 복권이 되었죠.

생각해보니 희빈장씨를 다룬 최근의 드라마는 할짓없는 사랑 이야기 권력투쟁 밖에 없는데,  
드라마 정도전, 드라마 용의 눈물의 경우는 권력투쟁 속에서 나라의 흥망성쇄를 다룬 드라마라서 좋게 평가하죠.
사실 이건 드라마를 안봐도 다 나오는 이야기죠. 좌주문생제 폐지, 신문고 도입, 과거제 재정립 등등등 나라의 기틀을 숱하게 만들고 육조직계제도 완성시키고 업적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온거. 그래서 세종이 그 두명의 왕을 이어 조선의 진정한 창업주가 된거까지.

Ps. 근데 태조 이성계는 왜 강비를 무시하고 이방과와 이방원 2명을 밀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특히 이방원을 더 밀어야 하거늘. 더욱이 정도전이 죽고난 이후에는 완전 바보가 되던데, 군공자가 왕이 되면 리더쉽이 이렇게 안흔들리는게 정상인데, 더욱이 이성계의 지략을 채워줄 가장 똑똑한 인물은 신하와 왕자들을 통틀어서 아들인 방원이거늘. 어차피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되는건 기정 사실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로스쿨 찬성자 한명 말 들어보면 골때리네 정치/사회

1. 사법시험 준비하느라 집 날린다. 그래서 로스쿨 찬성한다.

=>무슨 사법시험이 도박도 아니고, 그렇게 공부하는 놈들이 미친거지. 차라리 그 깡으로 보험업이나 중개업이나 이런거 하는게 나은데 이건 사법시험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개념이 문제네 그리고 집날라가는 경우는 공부할 장소가 없는데 상식적으로 누가 그런 자충수를 택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서 경제 개념이 없는걸 탓해야지 그걸 사법시험 탓하면 되나

2. 사법고시 문제처럼 과거제도도 문제가 많다 이황선생이 그 예

=> 고대 중세를 판가름할 결정적인 것이 과거제인데 참고로 고려를 망친건 음서출신들이라는건 고려사 간신 반역 열전만 봐도 그걸 참고를 안해도 답이 나올텐데. 예를 들어서 헌애왕후나 김치양이 목종 이런 세력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거란이 쳐들어왔고 이후 과거제 출신 서희가 오히려 강동 6주를 먹은것만 봐야지.

사실 이렇게 말하는 인간들 실체는 이거임

"나는 인사팀으로 일하면서 돈 모은게 있어서 노무사 시험 칠건데 몇년 좀 하다가 안되면 다시 회사취직해야지"

비전도 없고 노선도 없음 현실성도 없음 자기가 회사에 인사팀이면 첫술에 배부른 것도 아닌데 저글만 딱 봐도 직업상담사나 할 레벨에 노무사부터 함 웃긴건 미래조차도 못봄. 몇년공부하다가 안되면 회사복귀 저러니깐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하는거임. 역사조차도 못봄 당장에 과거제라면 폐단부터 이야기함

그리고 노무사가 2년 3년 공부해서 딸 자격이라서 중요한게 아니라 근로자들 도와주는 직업중 하나인데 인사팀이 맞는지도 의문임.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소릴 해대고 있음. 뭉치고 합치는거 밖에 모르는게 사람이다만 정도것 해야지.

PS. 죄송 장소잘못잡음



고려의 반란사가 매우 드라마틱하다. 미분류

강조의 난

고려 제7대 왕 목종이 18세에 즉위하였으므로 모후인 천추태후(千秋太后)가 섭정을 하게 되자, 귀양보냈던 천추태후의 정부(情夫) 김치양(金致陽)을 다시 불러들였다. 목종은 20세가 넘도록 후사를 얻지 못하였는데, 1003년(목종 6)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었다. 이 때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그들 사이에서 난 자식으로 목종의 뒤를 잇게 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 음모를 안 목종은 욱(郁)의 아들 당숙 대량군(大良君)에게 자기의 뒤를 잇게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 강조에게 왕궁을 호위할 것을 명하였다. 이때 나라 안에는 온갖 뜬 소문이 유포되었는데, 임금은 병환이 몹시 위중하여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고, 김치양 일파는 임금이 병중에 있음을 기화(奇貨)로 왕위를 빼앗으려 한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목종이 죽었다는 헛소문이 나돌게 되었으며, 이렇게 되자 강조는 김치양 일파를 몰아내고 목종의 뜻대로 대량군을 임금의 자리에 앉히려고 하였다. 강조가 군사 5,000명을 이끌고 개경으로 오던 도중에 목종이 아직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장이 난처해진 강조는 어차피 목종으로서는 나라를 흥하게 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하여, 부하 제장(諸將)과 의논한 후 별장(別將)으로 하여금 대량군을 맞이하게 하고 자신은 개경으로 들어가 목종에게 퇴위를 강요하였다. 목종으로서는 스스로 불러서 화를 당한 셈이다.

강조는 목종을 폐위시킨 후 대량군을 내세워 왕으로 삼았다. 이와 동시에 김치양 부자를 죽이고 천추태후와 그 일당을 모두 귀양보냈으며, 1009년에는 폐위시킨 목종을 시해하였다. 강조가 오랫동안 고려 조정을 어지럽혔던 천추태후 ·김치양 일파를 숙청한 일에 대해서는 백성의 지지를 받았으나, 그를 믿고 불러들인 죄 없는 목종을 시해한 일과 또 스스로 정권을 잡은 일에 대해서는 많은 비난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정변은 거란에게 고려침입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주었다. 당시 거란에는 성종(聖宗)이 있었는데, 그는 강조의 이신벌군(以臣伐君)을 문책한다는 표면적인 명분을 내걸고 내심으로는 앞서 서희(徐熙)의 외교수완에 말려들어 양보한 강동6주를 회복할 셈이었다. 그는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침입하여 1010년(현종 1) 11월 통주(通州:평북 선천 서북쪽)에서 강조의 군사를 대파하고 강조를 사로잡았다.

김훈 최질의 난

김훈과 최질은 1010년(현종 1)에 거란이 침입하자 이들을 격퇴한 공으로 상장군에까지 오른 인물들로, 거란의 침입 이후 군대의 증강에 따라 부족하게 된 백관의 녹봉을 경군(京軍)의 영업전(永業田)으로 충당하려 하자 크게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1014년박성(朴成)·이협(李協)·최가정(崔可貞)·임맹(林孟)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문신들로서 그러한 주장을 해오던 황보 유의(皇甫兪義)와 장연우(張延祐) 등을 포박하고 왕을 협박하여 이들을 귀양보내었다.

그리고 무신으로서 상참(常參)은 모두 문신을 겸하게 하였으며, 또 어사대(御史臺)와 삼사(三司)를 금오대(金吾臺)와 도정서(都正署)로 각각 개편하였다. 이로부터 무관이 문관을 겸하여 정사를 함부로 하게 되자 국가의 기강이 문란하게 되었다.

이에 전 화주방어사 이자림(李子琳, 王可道)이 왕에게 올린 계교에 따라 현종은 먼저 이자림을 서경유수판관으로 임명하고 미리 서경에 보내어 친히 장락궁(長樂宮)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이 때에 이자림 등은 술에 취한 김훈·최질·이협·최가정·임맹 등 19인을 주살하였다. 그리고 황보 유의·장연우를 다시 불러 기용하고 무신들이 고친 관직의 이름도 모두 복구하였다.


사실 이쯤되면 측천무후가 도입한 무과제같은 것도 헌애왕후 걔가 도입할 생각을 해야하는데, 진짜 멍청하기 그지없네,



무쿠리 고쿠리 귀신 이야기가 흥미롭군요. 역사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군이 규슈를 침공한 것을 "몽고 고구려의 귀신이 온다(蒙古高句麗の鬼が来る)"라고 두려워한 것에서 유래하였다.[1][2] 일본 측 기록에 의하면 연합군은 상륙지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해 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1] 이로 인해 현대까지 일본에서는 우는 아이를 달랠 때 "무쿠리 고쿠리 귀신이 온다(むくりこくり、鬼来るぞ)"고 겁을 주는 것이 일종의 풍습으로 이어져왔다.[1]

일단 고려는 곧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인정하는지 고리가 아닌 고쿠리라고 했네요.
뭐 저는 한국의 삼한 고대시대, 한국 중세 고려에 관심이 많고,

저에게 있어서 고려군은 거란족을 신나게 쳐바르고,여진족도 부들부들 떨게하고 홍건적, 몽골군, 왜군들까지 떨게만든 군대이긴하나
한편으론 저 고려군은 그 탐욕스러운 문벌 귀족들과 이후 권문세가들이 왕령을 멋대로 깨고 쓴 군대였고, 군인들이라서 왕의 명령이 아닌 나라나 왕이 아닌 귀족 한 사람 한 사람에 따르던 군대이자 군인들이죠. 그래서일까요 반란도 잦았고, 무신정권때는 무신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집단들이고(정작 신라 800년대 골품귀족들이 몇만 동원한거에 비하면 게임도 안되지만) 

그래서인지 늘 항상 신진사대부들에게 미친듯 욕을 먹었죠. 
유교도들인 신진사대부가 아닌 불교도 입장에선 권문세가가 불교를 타락시켰는데 신돈이 이를 바로잡다가 척살되었다고 하고,
심지어 서희, 강감찬, 윤관은 유교정신에 입각해 나라를 지켰는데, 도교나 불교가 이를 망쳤다니 무신들이나 친원파들이 이를 망쳤다고 하고 반대로 볼교 역시 이의방을 비롯해서 최충헌같은 무신들에게 희생을 많이 당했다고 하고,최우는 첫판과 갈리 날이 갈수록 개판이라고 하고,

역갤 일뽕들도 일본에서도 무쿠리 고쿠리 귀신 온다면서 비하하고, 또 주원장이라는 인간도 고려는 원나라의 속국이니 정벌해야 한다고 하고. 
 
왜 다들 몽골, 원 들먹일까. 오히려 원사를 공부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기철의 참살보단 차라리 몽골도 이미 망했고, 이자춘도 몽골인이니 이방원이나 이성계부자랑 손잡고 기철과도 손잡아서 차라리 이인임같은 권문세가나 신진사대부들을 숙청하라고 말하고, (물론 이쪽은 신진사대부보단 담판외교의 주인공 서희 장군을 높입니다)

그러고보니 고려는 참 견제하는 나라들이 많았네요. 내부에선 너무나도 갈등이 심각했고 (반란횟수로만 따지만 고려가 조선보다 더 우위에 년도 비례해선 고려가 더 높습니다) 일본은 아예 고려몽둥이 드립마냥 흉악스런 고려라고 하고....
하긴 고려가 통일을 했을때는 일본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있었고 중원은 쪼개지다가 송을 세웠다가 만주나 북방지역을 거란과 이후 여진이 그 자릴 점거했으니 견제하는 나라들이 엄청났죠.
 
뭐 잡설이 길어졌는데

저 무쿠리 고쿠리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하고 좀 불쾌하기도 하네요. 그래서 오해를 풀까하는데 저는 애시당초에 일본에 건나건 고려군을 과연 왕이 통제를 할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당장에 내부에서 왕의 말도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리는 고려군에 수장이라는 인간들이(이들은 왕군이 아닌 사병군을 거느렸기 때문이) 당연히 바다건너니 더 회군할 생각은 죽어도 없죠. 이걸 일본측이 왕한테 따지는게 가능한지 전 의문이고 뿐만아니라 이전에도 왜구는 있었죠. 그래서 무쿠리 고쿠리 귀신은 일본측이 고려에 대해서 심하게 오해하는 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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